프뢰벨 교육이론의 성립배경
1. 프뢰벨 시대의 철학
프뢰벨이 태어나 청년기를 보냈던 18세기는 칸트, 피히테, 쉐링 등 위대한 철학자의 출현이 말하여 주듯이 ‘철학의 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럽의 전 문화가 철학적 분위기 분위기에 농후하게 휩싸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처럼 인간의 품성과 가치를 지극히 높이 평가하고, 또한 인문가치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풍부하게 생산하며 감상하였던 세기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이와 같은 정신은 인간교육에서도 나타났다. 루소를 시작으로 하여 페스탈로치, 프뢰벨과 같은 교육사상가들에 의해서 이러한 ‘철학의 세기’는 ‘교육학의 세기’로 되었다고 할 정도로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뢰벨의 시대는 독일 이상주의 철학의 최전성기였다. 프뢰벨이 탄생한 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1781)」을 발표한 다음해였고, 칸트에 이어서 피히테, 쉐링 등의 위대한 철학자가 출현하였다. 이러한 철학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프뢰벨이 이 시대의 철학과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프뢰벨은 예나대학, 괴팅겐대학, 베를린대학 등에서 직접 철학자의 강의를 들었을 뿐 아니라 학우들과의 교제 또는 서적을 통하여 그 시대의 철학자나 시인 등과 많은 접촉을 가졌었다. 대학에서 그가 전공한 과목은 자연과학과 수학이었지만 계속 철학 강의를 수강했다. 특히 베를린대학에서는 고대철학사에 대해 비판적인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슈라이에르마허와 피히테의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프뢰벨이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이렇게 철학 강의를 들었다는 것은 그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한 것이었다. 이는 그 당시의 자연과학이 자연철학과 분리할 수 없는 직접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에 많은 연구자들이 자연을 체계화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에 강하게 풍미하고 있던 ‘단일성’사상이 자연과학에도 강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2. 독일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유럽에 흘렀던 한 정신의 파동으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 문학, 철학, 교육, 정치 등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동향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질풍노도’시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가 19세기 중엽의 비더마이어 시대에서 그 흐름이 멈추게 된다. 독일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써 비합리주의적인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 경우라 하겠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와 신과의 관계를 시계와 시계를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와 같이 모두 합리적·기계적으로 생각하는 계몽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무미건조한 이성의 지배에 대항하여 윤기있고 활기찬 삶을, 도덕화와 교화에 대항하여 야생과 자연 그대로를 내세웠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취지였다. 개성에 다시 눈을 돌렸다. 그들은 규범예술 대신에 특색있는 개성적인 예술을 하였다. 낭만주의에서 만물의 궁극적인 척도는 고전주의에서처럼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신이었다. 낭만적 인간은 고전적 인간처럼 숭고한 속인으로 타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형이상학적인 지주를 구해야만 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구별하는 커다란 요소는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지주에 있다. 이렇게 볼 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결코 상대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가 다 영원에의 의지를 주안으로 하고, 영원자의 파악을 그 위도로 하고 있다. 단지 영원자에 대한 태도와 파악의 방법에 서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프뢰벨은 고전주의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취하면서 이에 머무르지 않고 낭만주의로 나아갔다. 더구나 목사 아들인 그는 낭만적 인간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형이상학적 지주를 기독교에서 구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한 ‘내부에로의 길’은 프뢰벨에게 유아교육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그가 쓴 「어머니의 노래와 사랑의 노래」라든지, 놀이감인 은물을 보면 프뢰벨이 얼마나 낭만적이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3. 낭만주의 교육학
낭만주의 운동은 문학, 철학 등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교육사상에까지 크게 작용하였다. 교육사상에 핵심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인간성 교육’이었다. 시대적 세계상으로부터 독자적으로 ‘교육학’이라는 의미를 창조하였으며, 인간형성이라는 넓은 의미의 교육을 정립하게 함으로써 교육적인 사고와 교육제도상의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하였다.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문학과 인문주의 철학 속에서 시대적인 인문주의 이상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철학적 사상은 피히테, 헤겔, 슐라이에르마허, 헤르바르트 등에 의하여 교육적인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지니게 되어 많은 교육이론을 발전시켰다. 낭만주의 교육학에서는 인간은 본래적으로 선하므로 모든 소질들을 조화있게 발전시켜야 하며, 어떤 특수한 소질만을 조장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천성 속에 있는 모든 소질들은 선하고 값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 모든 소질들을 균형있게 성장시키는 것, 즉 인간의 모든 소질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이상이었다. 이렇게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나타난 교육학적인 사상이 소위 ‘소극적 교육’이다. 이 개념은 루소가 먼저 생각한 것인데, 그후 독일의 낭만주의자 특히 프뢰벨이 이를 더 발전시켰다. 이러한 낭만주의 교육학은 유치원을 창설하여 유아교육이론을 발전시킨 프뢰벨에게서 활짝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4. 페스탈로치와의 관계
1805년 프뢰벨이 임시로 가정교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교육자인 그루너를 알게 되었고, 그가 프뢰벨의 운명을 변경시켰다. 모범학교 교장이었던 그루너는 교직이야말로 프뢰벨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모범학교 교사가 된 후에 프뢰벨은 페스탈로치를 만나게 되었다. 페스탈로치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정신적인 아버지와 같이 느꼈고, 그의 정신에 따라 교육자로서 사는 것에 생애를 거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교육자로서의 인격에 지극한 감명을 받아 열심히 배웠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 학도들의 교육에 거는 기대와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교육을 통해 국가사회 그리고 인류를 개혁하려는 이념이 그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에 대한 전면적인 심취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불만이나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프뢰벨은 1811년 6월에 괴팅겐대학에 입학하여 페스탈로치에 의해서는 해결의 길이 주어지지 않았던 교육의 근본적인 통일원리를 탐구하려 하였다. 체험과 사색을 통하여 그의 머리 속에 서서히 인식되어 오는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그는 괴팅겐대학에서 소위 ‘공의 법칙’으로 결정화시켰다. 그러나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에 대한 전면적인 심취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불만이나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프뢰벨은 1811년 6월에 괴팅겐대학에 입학하여 페스탈로치에 의해서는 해결의 길이 주어지지 않았던 교육의 근본적인 통일원리를 탐구하려 하였다. 체험과 사색을 통하여 그의 머리 속에 서서히 인식되어 오는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그는 괴팅겐대학에서 소위 ‘공의 법칙’으로 결정화시켰다. 이와 같이 페스탈로치에 의하여 점화된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정열은 ‘공의 법칙’의 착상에 의하여 내적인 성숙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교육이념이나 방법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페스탈로치의 계몽주의적·현실주의적 경험과 프뢰벨의 낭만주의적·관념론적 사변과의 사이에서 생긴 기본적인 인식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프뢰벨의 교육사상은 그가 태어나 성장한 시대의 철학사조인 초기 낭만주의와 관념론이라는 토양 속에서 잉태되고 발전하였다. 특히 낭만주의 사상가인 아른트, 노발리스, 쉐링, 피히테, 크라우제, 슐라이에르마허 등의 영향으로 프뢰벨의 교육사상은 유기론적 세계상에 근거하고 있다. 즉 그는 인간 내부로부터의 조화로운 성장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어린이는 자신의 내부에 개별적인 성향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바람직한 교육이란 인간이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그 자신의 고유한 내부법칙에 따라 돕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종교적인 면에서는 범신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가 페스탈로치의 영향으로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고, 페스탈로치의 교육방법에 전면적으로 심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이론이 페스탈로치와 다른 독창성이 발견되는 것도 이러한 낭만주의적·관념론적 사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뢰벨의 교육
1. 교육목적과 내용
프뢰벨은 인간의 교육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밝히는데 있어서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고 있다. 교육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어떠한 교육목적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교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프뢰벨은 인간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어떤 독자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 그가 말하는 신-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으로서 신의 본직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은 신적인 것, 또는 신으로부터 나오고 신적인 것 혹은 신에 의해서만 제약된다. 신 안에서만이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 있다. 모든 것 속에 신적인 것과 신이 깃들고 작용하며 또 지배하고 있다. 인식하는 존재, 이성을 갖는 존재로서의 특수한 사명, 특수한 직분은 인간의 본질은, 인간 속에 있는 전적인 것을, 따라서 신을 더욱이 인간의 사명과 직분 자체를 충분히 인식하고 명확하게 통찰하는 것, 다시 그것을 자신의 결정과 자유로서 자기의 생명 속에서 실현하고 활동시켜 구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신적인 본질, 신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프뢰벨은 말한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인식하여야 하고, 신적인 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프뢰벨은 말한다. 왜 인간은 신적인 것을 인식하여야 하고, 신적인 것을 실현할 것을 사명으로 하는가, 프뢰벨은 이에 대하여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의 존재 근원 또한 ‘신’이기 때문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 하에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는 일차적으로 내적인 것의 인식과 실현, 즉 신적인 것의 실현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타고난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방해되거나 간섭되어서는 안된다. 내적인 것, 즉 타고난 본질에 기초를 두고 그것이 잘 실현되도록 도와주고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된다. 그리하여 프뢰벨은 교육은 수동적이고 보호적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이 내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외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일 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부정적이고 방해적,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두 번째로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추종적인 교육에서 규정적 교육으로의 전환, 나아가 이들 양자의 결합이다. 이 전환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인간의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 순수하게 규정적, 요구적, 명령적인 인간에 대한 교육의 방법은 본래 명확한 자기 의식의 각성이 있고서 신과 인간이 합일적 생명의 개시와 더불어 아버지와 자식, 제자와 스승의 상호 이해와 공동의 생명이 개시된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진리가 전체의 본질과 개인의 본성에서 인도되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뢰벨이 명령적, 규정적 교육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서 어린이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반하는, 이중적으로 부과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프뢰벨의 규정적 교육은 어떤 것을 그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를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뢰벨은 추종적 교육과 규정적 교육만으로 인간의 교육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들 두 교육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의 것만 강조하게 될 때는 참된 교육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프뢰벨의 설명을 들어보자. 착한 교육, 올바른 교육, 참된 교훈에 있어서는 필연성이 자유를, 법칙이 자기 결정을, 외적 강제가 내심의 자유의지를, 외적 증오가 내심의 사랑을 환기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법칙이 기반과 붕괴의 강제가 노예근성을, 필연성이 맹종심을 낳는다. 또 압박이 파괴와 타락을 낳고 무거운 짐이 파멸과 비천을 초래하게 된다. 더욱이 엄격함에 의하여 가혹과 반항과 불신을 낳는 곳에서는 모든 교육 즉, 교육, 교수, 교훈의 작용은 모두 파괴당하고 만다. 상황에 따라 추종적 교육을 혹을 규정적 교육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두가지 교육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추종적 교육과 규정적 교육 모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들이 제3의 것에서 통일을 이룰 것을 보여준다. 프뢰벨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혹은 요구와 복종 사이에서의 제3의 것으로,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모든 조건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비자의적으로 자기를 표명하는 최선의 것과 정의”가 지배하고 있으므로 이를 승인하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그 지배에 몸을 맡기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프뢰벨의 추종적 교육, 규정적 교육 그리고 이들의 통일이라는 교육에 대한 견해는 놀이의 중요성과 의미를 밝히는데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프뢰벨은 인간 발달 단계 중에서 특히 이른 시기의 발달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이른 시기의 발달과 관련하여 이들 견해가 주는 시사가 크기 때문이다. 프뢰벨은 구체적으로 인간 발달 단계를 유아, 유년, 소년, 청년, 노년으로 구분하고 각 단계는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침투를 해 가면서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유아기를 “주로 다만 살아가기 위한 것뿐인 생명의 단계 내지 생명 그 자체의 단계, 내적인 것을 바깥에 나타낸다는 것을 주로 하는 단계, 그리고 소년기를 주로 외적인 것을 내면화하는 단계, 즉 학습의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이 발달단계의 특징에 따라서 추종적 혹은 규정적인 교육이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프뢰벨이 주장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 따르는 추종적인 교육을 위주로 하는 교육, 이는 독자적인 능력, 신적인 본질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에 기초한 것이지만, 교육의 출발점을 인간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두어야 한다는 접에서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2. 교육방법
첫째, 통일의 원리이다. 프뢰벨은 “정신계와 자연계 그리고 개인과 사회간에는 분할이 없는 하나의 대통일체로서의 세계 또는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에는 근본이 되는 힘, 즉 절대적인 것”이 있는바 그 절대적인 것이 신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프뢰벨은 자연과 정신을 분리 또는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양자는 그 근원에 있어서 하나로 합일한다고 하는 사상이었다. 세계의 전체를 하나의 조화, 통일된 전체로서의 유기체로 보고 그 중심 또는 근원으로서의 신이라고 한 그의 사상체계는 종교적, 철학적, 낭만주의적 세계관에 서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이 프뢰벨에 의하면 만물은 모순, 분열, 투쟁이 아니고 오히려 조화, 통일, 융합이라 보는 한 그의 교육목적은 자명하다. 그에 의하면 신적인 통일을 빼놓고서는 자연도 없고 인생도 없으며 이 자연계는 생명의 커다란 유기체이며, 개개의 자연현상은 내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 유기체에는 하나의 영원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융합체로써 정신적인 것이 없는 물질은 죽은 것이며, 정신적인 것과 관계없는 물질은 혼돈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리하여 우주의 모든 형성작용의 근저에는 하나의 통일, 즉 신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기 활동의 원리이다. 프뢰벨은 교육을 ‘창조적인 자기활동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신성’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타율적이고 간섭적인 교육은 거부되어야 한다. 자기발달의 원리 즉, 자기활동이란 자기자신의 동기에 의해서 결정되고, 자기자신의 흥미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자기자신의 힘에 의해서 지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과제는 아동의 모든 흥미와 욕구에 따른 창조적 활동에 따라 교육되어야 한다.
셋째, 놀이(play) 및 작업의 원리이다. 놀이에는 운동적인 놀이와 작업적인 놀이가 있다. 운동적 놀이는 행진, 뛰기, 무용 등을 말한다. 작업적 놀이는 은물(Gifts of God : 아동이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를 구성하는 탁상놀이이다. 아동들은 이 은물을 통하여 감각기관을 훈련하고 우주의 이법을 깨닫고 신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프뢰벨은 ‘은물’을 통하여 아동의 신성을 계발하려 했기 때문에 후세의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상징주의”라고 명명하였다.
넷째, 연속적인 발달의 원리이다. 연속적인 발달의 원리란 인간의 생활 성장은 각 단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연속과 계속이지 단절이나 비약이 없다는 것이다. 유년다운 생활을 함으로써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이다. 프뢰벨은 아동의 생활은 어른들의 생활이 아닌 아동 그 자체를 둘러싼 생활임을 강조함으로써 교육의 미래생활에 대한 준비설을 부정하였다.
다섯째, 노작교육의 원리이다. 아동의 모든 단순한 생산활동을 노작으로 보고 생명 그 자체를 활동·노작·창조라고 보았다. 인간의 사명은 행동을 통하여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 신성이 숨겨져 있는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내적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명을 신성의 표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노작의 원리는 인간 생명의 원리이며 생명의 발전을 위한 교육원리라는 것이다. 그 생명 발전의 과정이 노작이기 때문에 노작 교육이 곧 인간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페스탈로치의 노작교육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3. 교육사적 의의와 후세에 끼친 영향
첫째, 유치원의 창시자이다. 프뢰벨에 의하면 유치원은 아동시대의 ‘자유공화국’으로 유치원의 목적은 성인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잘못 이해된 자유의 무법학교로부터 진실한 학교를 수하는 것이다.
둘째, 유치원의 전신인 1839년 장난감 중심의 ‘유아교육 지도자 강습소’를 개설하여 유아 40명을 모아 ‘조그마한 어린이 작업소’를 만든 것이 유치원의 전신이 되었다.
셋째, 교수의 기본원칙으로서 사회화의 의의를 인정한 최초의 교육사상가이다.
넷째, 자기표현의 활동을 중시한 것으로 아동교육에 있어서 유희의 본질적 요소와 자기활동을 중시한 점이 교육에 공헌하였다.
그리하여 프뢰벨이 창설한 유치원이 미국 공립유치원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류교육가 M. Montessori의 ‘아동의 집’ 창설에 영향을 주었다.
프뢰벨의 교육사적 의의와 한계
첫째, 유아교육의 본질을 재정립했고, 유아교육은 부녀자의 사명이라는 생각에서 부모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둘째, 사랑을 전제한 모성애적 보살핌에 의해서 유아의 생활은 유지될 수 있으며, 유아양육은 모성애적 본성의 발휘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셋째, 몸, 마음, 정신의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여 전인교육의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넷째, 유희를 자기 표현의 가장 가치 있는 교육으로 생각하여 놀이와 게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다섯째, 아동교육은 그들의 활동, 욕구, 흥미에 의거하여 자유롭고 자발적인 성장과 타율적 강제가 아닌 자율적, 자발적인 계발을 중시하였다.
여섯째, 근대교육에 있어서 개성존중, 아동중심주의 등의 교육사조가 프뢰벨에서 구체화되었다.
일곱째, 교육은 자연적 과정을 따라야 한다는 점과 행함으로써 배운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덟째, 자기활동·연속발전·개성화·사회화·직관·노작·생활경험 등은 현대교육의 바탕을 이루게 하였다.
아홉째, 프뢰벨의 유치원 교육의 발달로 말미암아 여교사의 양성과 보모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발달하게 되었다.
[출처:한국가베교육협회]